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육군 (문단 편집) === 갑·을종 간부후보생 제도 ===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하며 [[1933년]] [[5월 1일]] 자로 제도가 대폭 변경된다. 이때서야 1년 지원병스러운 자비부담 및 무급 규정이 삭제되고, 오히려 수당이 지급된다. 또한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하는 게 아니라 입대 후 3개월이 지난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폭 변경되었다. 결정적으로 갑을종제가 이때 생긴다. 다만 복무 기간은 1년으로 동일. 일본군은 입대 후 6개월간 초병 교육을 받는데 이중 3개월째 '1기 검열'이라고 하여 연대장 주관하에 평가를 한다. 합격자는 6개월째 [[일병]]으로 승진할 자격을 얻으나, 불합격자는 재교육이다. 그리고 합격자는 [[간부후보생]] 자격이 생기는데 배속장교가 제직하는 학교에서 [[교련]] 검정 합격에 한한다. 즉 중졸 이상은 돼야 한다. 물론 이때도 기술, 경리부, [[군의관]] 등에 종사할 자는 해당 [[학교]]를 졸업하거나 [[면허]]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간부후보생에 합격한 자는 즉시 일병 계급을 부여하고 채용 3개월 만에 예비역 장교가 되는 갑종간부 후보생(간후), 예비역 하사관이 되는 을종 간부 후보생(을후)로 구분된다. 이들은 상병이 되어 부대에서 입영 1년째까지 필요한 근무 및 군사학을 습득한다. 갑종이 2개월 후 군조가 되며, 종말 시험 성적과 전체 근무 성적에 따라 합격하면 예비역에 편입된다. 이후 1~2개월간 예비역 견습사관에 복무 후 장교가 될 자격을 얻게 된다. 을종은 상병에서 승진 없이 하사관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 후 하사관이 될 자격을 얻고 예비역이 된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자 대규모 동원을 하게 되어 장교와 하사관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비역 장교들의 능력이 의문시되었고, 각 [[부대]]에 위임된 교육이 문제의 하나로 판단되어 그해 12월부터 부대 자체 교육 후 도요 육군 교도 학교 등에서 통합 교육을 받게 변경되었다. 이후 [[1938년]] [[조선지원병]], [[1944년]] [[학병]]이 겪은 제도가 바로 이것이라 '간부후보생' 하면 보통 이 시기의 제도를 뜻한다. 일단 입대 후 초병 교육을 1개월 늘려 4개월간 하게 하고, 채용 자격을 [[중등교육기관]]인 실업학교 이상으로 완화하였다. [[1937년]] 간부후보생 채용 수는 병과 각부 합계 6,160명(갑종은 4,440명)이었는데, 새로운 제도에서는 1938년 9,511명(갑종 5,601명), [[1939년]] 17,666명(갑종 10,995명)으로 크게 늘었다. 통합 교육 기관은 병과에 따라 도요 육군 교도 학교, 육군보병학교, 육군공병학교, 육군 경리 학교에서 하다가 '육군 예비 사관 학교'등을 신설하여 약 11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다만 항공 병과는 항공관계 학교에서, 기술 종사자는 육군 조병창에서 약 1년간 교육을 받는다. 또한 복무 기간도 대폭 늘어 신병 단계에서 채용된 사람은 현역병과 동일하게 2년, 중도에 채용된 자는 채용일로 부터 1년 8개월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4개월간 초병 교육을 받다가 채용 시 일병이 되어 2개월간 부대 집합 교육을 받는다. 그러면 상병이 되며 채용후 3개월 뒤 갑을종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갑종 간부 후보생이 되면 예비사관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는데 1개월 뒤 오장, 다시 3개월 뒤 군조, 교육 수료 후 조장 계급의 견습 사관이 된다. 그리고 견습사관 신분으로 부대에서 4개월간 실무를 배우면 장교단의 형식적인 회의를 통해 소위로 임관하며 예비역에 편입된다. 을종 간부 후보생이 되면 부대 내 하사관 교육대 등에서 자체 교육한다. 4개월 뒤에는 오장, 다시 8개월이 지나 시험을 봐서 우수한 자는 군조가 되며 예비역에 편입된다. 그런데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고,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며 간부 후보생 T/O를 대폭 늘린다. 또한 일본에서는 [[1943년]] [[12월 1일]], 조선은 [[1944년]] [[1월 20일]] [[학도병]]을 모집하여 간부후보생 자격을 주었다.[* 단 일본 학병은 전원 간부후보생 자격을 주어 3개월 집체교육 후 갑을종 그분을 하고, 조선인 학병은 지원자에 한하여 간부후보생 시험을 보게 하고 합격자만 간부후보생이 되었다.] 그리하여 간부 후보생 수업 기간은 단축되었으며, [[1944년]] [[4월]]부터는 채용 시 상병[* 조선인 학도병이 간부 후보생이 되었을 때 딱 이 시기였다.], 2개월 후 [[병장]][* [[1941년]]에 신설 계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제가 패망하자 당시 한일 학병들이 막 견습사관이 된 단계였는데, 일괄적으로 소위 임관 시켜주며 간부후보생 제도는 종료되었다. 참고로 [[1938년]] [[조선지원병]] 1기생 현역 300명 중에서 갑종 간부후보생은 2명, 을종 간부후보생은 30여명이라는 당시 신문기사가 있다. [[1944년]]에 조선인 학병들의 경우 4,000여명 중 갑종 403명, 을종 460명에 달한다. [[장준하]] 선생은 간부후보생으로 선정되어 부대 내 자체 교육 중 탈출하여 [[임시정부]]로 간 케이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